한국 배구의 거목 장윤창, 영원한 별이 되다
80년대 한국 남자배구를 이끌었던 전설적인 공격수 장윤창 교수가 지병으로 별세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전합니다.
1980년대 한국 남자배구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장윤창 교수가 향년 65세로 별세했습니다. '돌고래'라는 별명과 함께 폭발적인 공격력, 한국 최초 스카이 서브 도입 등 그의 업적은 한국 배구사에 깊이 새겨져 있습니다. 철저한 자기관리로도 유명했던 그의 삶과 배구계에 남긴 발자취를 돌아봅니다.
한국 배구의 전설, 장윤창을 기억하며
1980년대와 90년대 초반, 한국 남자배구의 부흥을 이끌었던 장윤창 교수가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그는 선수 시절 뛰어난 실력과 성실함으로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또한 한국 배구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로 평가받습니다. 그의 갑작스러운 별세 소식은 배구계와 팬들에게 큰 슬픔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가 남긴 위대한 업적과 스포츠 정신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코트를 뒤흔든 '돌고래'의 등장
인창고 2학년,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장윤창 선수는 1978년 로마 세계선수권 4강 신화의 주역으로 떠올랐습니다. 마치 돌고래가 튀어오르듯 엄청난 점프력으로 내리꽂는 그의 후위 공격은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이는 한국 남자배구가 국제무대에서 거둔 핵심적인 성과 중 하나로 기록됩니다. 선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주전 공격수로 활약한 그의 모습은 당시 배구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스카이 서브, 혁신을 이끌다
장윤창 선수는 경기대 재학 시절, 국내 남자배구 역사상 처음으로 스파이크 서브, 즉 '스카이 서브'를 선보였습니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이 기술은 강력한 공격의 시작을 알리는 무기였습니다. 예를 들어, 상대 팀 리시버들은 그의 강력하고 예측 불가능한 서브에 크게 고전했습니다. 이후 김세진, 박철우, 임동혁으로 이어지는 국가대표 아포짓 거포 계보의 필수적인 선구자 역할을 그가 해낸 것입니다.
아시아를 제패한 불멸의 기록
그의 활약은 국제대회에서도 눈부셨습니다. 특히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남자배구의 위상을 드높였습니다. 그의 주요 국제대회 메달 획득 기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 대회 연도 | 대회명 | 메달 |
|---|---|---|
| 1978 | 방콕 아시안게임 | 금메달 |
| 1982 | 뉴델리 아시안게임 | 금메달 |
| 1986 | 서울 아시안게임 | 은메달 |
이러한 성과는 그가 얼마나 뛰어난 선수였는지를 증명하는 중요한 지표입니다.
V리그 전신을 평정한 슈퍼스타
V리그의 전신인 대통령배 배구대회에서 장윤창 선수는 독보적인 슈퍼스타였습니다. 상대적으로 전력이 약했던 소속팀 고려증권을 이끌었습니다. 초대 챔피언 등극을 포함해 총 6회 우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운 것입니다. 이는 당시 최다 우승 기록으로, 그의 존재감이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의 리더십과 결정적인 순간의 득점 능력은 팀 우승의 핵심 동력이었습니다.
철저한 자기관리, 귀감이 된 선수 생활
장윤창 선수는 동시대 다른 선수들에 비해 유난히 긴 현역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그 비결은 술과 담배를 전혀 하지 않는 철저한 자기관리에 있었습니다. 이러한 그의 모습은 후배 선수들에게 프로 선수로서 가져야 할 자세를 보여주는 귀감이 되었습니다. 이는 필수적인 프로의 덕목입니다. 건강 문제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은 그래서 더욱 안타깝게 다가옵니다. 그의 꾸준함은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코트 밖에서의 삶과 그가 남긴 유산
은퇴 후 장윤창 교수는 대한배구협회 경기감독관과 기술이사를 역임하며 배구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또한 경기대학교 스포츠과학부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 양성에도 힘썼습니다. 그의 아들 장민국 선수는 농구 선수로 활약하며 최근 KBL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경험했습니다. 아버지의 스포츠 유전자를 이어받은 것입니다. 그의 가르침과 영향력은 배구계를 넘어 지속될 것입니다.
배구계의 애도, "큰 별이 졌다"
갑작스러운 비보에 배구계 동료와 후배들의 애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김세진 한국배구연맹 경기본부장은 고인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국 배구의 한 시대를 풍미하신 레전드고, 내 인생의 길잡이 같은 분." 그는 깊은 슬픔을 표했습니다. 신영철 감독 또한 "한국 배구의 큰 별이 졌다"며 고인을 추모했습니다. 이러한 반응들은 고인이 배구계에 얼마나 중요한 존재였는지 여실히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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